다사다난했던 올 한해도 다 저물어간다. 이즈음이면 누구나 한 해에 대한 반성과 새해에 대한 기대로 들뜨기 마련이다. 여행은 그런 반성과 기대를 맘 속 깊이 되새기게 해준다. 이번에 소개하는 서울 근교의 김포는 북녘땅을 마주보고 있다. 




 ☞아련한 향수,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

임진강을 옆에 둔 김포시 대곶면. 군사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덕포진 조금 못미처에는 35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두 선생님이 세운 교육박물관이 있다. 어린 제자들과 함께 한 소중한 추억이 차곡차곡 담겨 있는 곳이다. 박물관 여기저기 놓인 지나간 시절의 교육 용구들은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을 요즘 세대들에게는 급속도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현재와 과거를 더듬어보게 해준다.

교육박물관(1996년 설립)이 있기까지의 사연을 들어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 사고로 시력을 잃고 아이들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는 현실에 마음 아파하던 아내(이인숙 관장)를 위해 남편(김동선 관장)이 수년간 교육 자료를 모아 마련해준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옛 시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교실마다에는 요즘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나무틀에 모래를 담아 글씨 연습을 하던 사판, 일제시대 때 사용했던 풍금, 빛바랜 교과서와 교재, 옛날 농기구, 병아리 우리, 앉은뱅이책상, 낡은 가방, 검은 색 교복, 책보, 분필, 공책, 몽당연필, 쇠난로, 양은 도시락, 방패연 등등 저마다 사연이 서린 4천여 점의 물건들이 교실 여기저기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문의: 031-989-8580

☞강화도와 마주보고 있는 덕포진

교육박물관에서 1분 거리에 있는 덕포진.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진은 우리말로 군사기지란 뜻이다. 김포와 임진강 건너편의 강화도는 유난히 외적의 침입이 잦았다. 덕포진(사적 제292호)은 그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맞닿아 있는 강화도의 초지진과 함께 양쪽에서 외적의 침입을 포로 쏘며 저지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조선군은 두 차례나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다. 구한말(신미양요 때)에는 미 해군이,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해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가 덕포진 앞바다를 따라 피란을 갔다. 1871년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다 평양 주민들에 의해 불에 타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신미양요는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일어났다. 그 당시 미국은 5척의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 초지진을 점령했다. 병인양요는 프랑스 해군이 덕포진에 진을 치고 조선군과 대치한 끝에 결국 프랑스 군이 철수하고 만 사건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전란의 흔적들

세월이 흐른 지금, 몇 개의 포 진지만이 이곳이 역사의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바닷가 언덕에는 그 당시 불을 뿜던 포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임진강과 그 너머 강화도를 주시하고 있는 12개의 포대는 바닷길로 침입해 오는 적을 강화도 초지진과 함께 양쪽에서 포를 쏘아 바다에서 섬멸하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마지막 포대진지로 가기 전에 있는 파수청은 포병을 지휘하고 각 포대에 공급할 불씨를 실어 날랐던 곳이다. 포대와 돈대의 중심부에 있는 건물터로 1980년 덕포진을 발굴 조사할 때 발견하였다. 건물터에서 나온 포와 포탄, 조선시대의 화폐인 상평통보 2개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덕포진 끝머리에는 고려시대 뱃사공인 손돌의 묘가 있다. 손돌은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뱃길을 잡은 사람으로, 험한 뱃길에 불안을 느낀 왕이 그의 목을 베려하자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워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전한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  덕포진 들머리의 유물전시관에서 덕포진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조각품도 감상하고 눈썰매도 타고

덕포진을 둘러보고 누산 삼거리에서 강화 쪽으로 조금 가면 김포조각공원이 나온다. 문수산 기슭에 자리한 조각공원에는 미국의 댄 그레이엄, 러시아의 일리야 카바코프, 일본의 고조 니시노 같은 외국의 유명 작가들과 국내 작가들이 출품한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수목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도심에서는 맛보기 힘든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조각공원 끝머리 능선 위 팔각정에 오르면 시원스레 펼쳐진 김포평야와 한강이 내려다보여 상쾌하기 그지없다. 공원에는 또 배구장 농구장과 야외공연장 등을 갖춘 청소년수련관, 눈썰매장, 레포츠 공원도 함께 있어 운동을 하기에도 좋다. 특히 길이 120미터, 폭 30미터의 성인용 슬로프와 어린이용 슬로프가 각각 설치돼 있는 눈썰매장은 단연 인기다. 눈썰매장 운영시간 : 오전 10시-오후 5시. 눈썰매장 ☏ 031-981-7300, 989-6700




☞가족 산행지로 좋은 문수산

조각공원 맞은편에는 김포에서 가장 높은 문수산(해발 376m)이 솟아 있다. 동쪽으로는 한강과 서울의 삼각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명산이다.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사철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이라 불린다. 산행 기점은 강화도를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 산림욕장.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진 삼림욕장에서 시작하는 완만한 산길은 김포와 강화 사이를 흐르는 염하강과 남북을 흐르는 한강하구, 그리고 북녘 땅을 바라보며 정상으로 이어져 된다. 해가 이우는 저녁 무렵에 가면 강화와 김포 사이의 염하강으로 스러지는 낙조도 감상할 수 있다.

▶등산 코스: 삼림욕장-전망대-홍예문-중봉쉼터-정상-남문방향 능선-주차장(총 2km, 2시간 소요),고막리야영장-홍예문-중봉쉼터-정상-문수사-풍담대사부도-홍예문-고막리야영장(총 2km, 2시간 소요). 

문수산 자락에는 1694년(조선 숙종 20년)에 쌓은 문수산성(사적 제139호)이 있다. 강화 갑곶진과 함께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1866년(고종3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이 산성을 점령한 역사가 있다. 성 이름은 ‘문수사’라는 절에서 유래하였다. 축성 당시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병인양요 때 모두 불탔다. 현재 북문과 남문을 복원하고 성곽도 새롭게 단장했다. 산을 오르다보면 발 아래로 펼쳐지는 길쭉한 성곽을 볼 수 있다. 산성 안에 있는  문수사는 신라 시대 건립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한편, 문수산을 오르다 보면 주먹만 한 자갈들이 반죽으로 뭉쳐놓은 것처럼 뒤엉켜 있는 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역암이라 불린다.  




☞대명포구에서 시작하는 평화누리길

김포 끝자락에는 어촌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대명포구가 있다. 서해에서 잡히는 각종 어종이 모이는 곳이다. 포구 한쪽으로 수산물시장, 어판장, 횟집, 함상공원 등이 늘어서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 아주 좋다. 특히 함상공원엔 1944년 미국에서 건조돼 2차 세계대전과 월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상륙함(운봉함)을 전시해놓았는데 직접 배에 들어가 내부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7시. 함선 갑판에 서면 강 건너 강화도가 또렷이 바라보인다. 대명포구는 6.5㎞의 평화누리길(덕포진 둘레길) 기점이기도 하다. 평화누리길(강변 DMZ 트레킹)은 경기 북부 DMZ 일원의 안보관광지 및 자연생태계를 가까이서 보며 걸을 수 있는 도보 여행길. 현재 김포-고양-파주~연천을 잇는 12개 코스(총 연장 180km)가 열려 있다. 덕포진 둘레길은 대명항에서 문수산성 남문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14.9㎞ 중 일부 구간(대명항-덕포진-덕포마을-범선카페-대명항)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분단의 상흔(傷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민족의 염원을 안고 우뚝 선 애기봉

우리나라 서북부(휴전선)에는 북한땅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3개의 전망대가 있다. 그 중 애기봉은 북한의 개풍군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전망대다. 애기봉이란 이름은 병자호란 때 끌려가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죽은 평양감사를 그리워하다 죽은 기생 ‘애기’의 한이 서려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애기봉 전망대에 서면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가르는 염하강이 한강으로 내리닫는 모습이 시선을 압도한다. 염하(鹽河)는 민물이 섞이고 소금기가 적은 좁은 해협으로 얼핏 강처럼 보인다. 김포엔 한강 가장 북단에 위치한 포구가 있다.  평화누리길의 종점인 전류리 포구가 그곳이다. 뒤집힐 전(轉), 흐를 류(流)를 써서 이름 지은 전류리는 서해의 바닷물과 한강의 민물이 만나 이룬 포구로 한강 어로한계선과 맞붙어 군부대의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는 곳이다. 2007년부터 일반인에게도 개방했지만 여전히 감시에서 자유롭지 않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포구엔 어선 몇 척만이 정박해 을씨년스럽고 사람도 차도 뜸해 고적감마저 감돈다. 포구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조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