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둘러봐도 산과 들뿐인 장수. 때 묻지 않은 태고의 자연은 소음과 매연에 길들여진 도시민들에게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을 선사한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익산장수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쉽사리 갈 수 없는 오지였지만 지금은 사통팔달의 교통요지가 되었다. 여름이 절정에 달한 장수는 요즘 피서객들로 떠들썩하다. 한적하던 고을 여기저기에 활력이 샘솟고 있다.
☞때 묻지 않은 계곡과 체험마을
길손은 먼저 대전 통영 고속도로 장수 나들목을 나와 이 고장 끝머리에 있는 토옥동 계곡으로 간다. 남덕유산 한 자락에 숨어 있는 토옥동(계북면 양악리)은 아직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장수의 숨은 명소이다.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계곡의 암벽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수가 절경을 뽐내는데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오르는 기분이 참 좋다.
토옥동 계곡 들머리 마을 한복판에는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데 평생을 바친 건재(健齋) 정인승(鄭寅承·1897-1986)선생의 기념관이 있다. 선생은 1935년 조선어연구회를 창립하고 한글 큰사전 편찬과 학회 기관지인 ‘한글’ 편집에 관여하는 등 항일애국운동을 펼쳤으며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돼 3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농촌체험마을인 하늘내 들꽃마을(www.slowzone.co.kr)도 지척에 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천천면의 산골짜기를 주민들이 정성스레 가꾼 마을이다. 폐교를 수리하고 친환경 농법을 이용해 농사를 지으면서 연간 1만여 명의 도시민들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철따라 허브야생화 관찰, 별자리 관찰, 천연염색 등 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목조와 황토로 지은 민박집도 갖추고 있어 하룻밤 머물며 농촌 정취에 푹 빠져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
여기서 장수읍내까지는 15분 거리. 읍내에서 볼만한 것으로는 장수향교와 의암송이다. 향교(鄕校)는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지방의 교육기관이다. 장수향교가 유명한 것은 조선 태종 7년(1407) 창건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이면서 보물로 지정된 대성전(大成殿) 때문이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에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 볼만한데 얼핏 큰 사찰의 대웅전을 연상케 한다. 앞면 가운데에 단 여닫이문이며 우물 정(井)자 모양의 창, 지붕 처마를 받친 공포 등 겉모양이 무척이나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장수군청 앞에 있는 의암송(義巖松· 천연기념물 397호)도 볼만하다. 이 소나무는 16세기 후반 당시 장수 현감 최경회가 의암 논개와 함께 심은 것이라 한다. 수령 400년을 자랑하는 고목으로 원줄기가 왼쪽으로 꼬여 수평을 이룬 모양새가 특이하다.
☞금강 발원지로 가는 길
장수읍내에서 남원 방향 19번 국도를 따라가다 수분령휴게소 조금 못미처 우측 원수분 마을로 접어들면 금강 발원지인 뜬봉샘으로 가는 산길이 나온다. 마을에서 뜬봉샘까지는 2km , 40분 거리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다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뜬봉샘에서 솟아오른 물줄기는 금강의 첫 실개천인 강태등골(신무산의 한 갈래)을 타고 1.5km를 흘러 수분천으로 이어진다. 수분천은 다시 5.5km를 흐르며 이웃 실개천들과 합류, 장수읍 용머리마을에서 섬진강의 물줄기인 진안 팔공산(1151m) 북쪽 계곡 물을 만나는데 팔공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섬진강, 동쪽은 금강 수계가 된다.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큰 강이다. 그 유장한 물길이 약 1,000리(397.25km)나 된다.
☞피서지로 좋은 덕산계곡
뜬봉샘에서 내려와 덕산계곡으로 간다. 장안산이 만든 덕산계곡은 장수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장안산(1,237m)은 일명 영취산이라고도 한다. 일반인들에게 이 산은 생소하게 다가오지만 산 좀 탄다 하는 사람들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연결되는 산이라 하여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장안산은 덕유산과 지리산 중간쯤에 있다. 정상(상봉)에 서면 남쪽으로 중봉, 하봉이 솟아 있고 북으로는 덕유산 줄기가 아득한데 눈을 멀리 주면 백두대간의 큰 산줄기와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도 시야에 들어온다.
덕산계곡에 들면 차랑차랑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지지배배 우는 산새 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장안산 상류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죽산리 쪽으로 내달리다 중간쯤 골짜기에서 S자를 그리며 흐르니 덕산계곡이다. 용림댐 건설로 예전의 멋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안에 들면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답다. 덕산계곡의 하이라이트인 용소(윗용소, 아랫용소)까지 그윽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마치 지리산의 한 귀퉁이를 옮겨놓은 것 같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계곡에는 용이 살았다는 용소를 비롯해 민들바위, 용바위, 신선바위, 정승바위 등 기기묘묘한 기암과 은골, 절골, 감골 따위의 은밀한 골짜기가 깊은 멋을 더한다. 용소에서 계곡을 따라 1시간 정도 내려가면 각종 편의시설(오토캠핑장, 수변피크닉장, 체육광장, 식당, 매점, 물놀이장, 통나무집, 캠프파이어장 등)이 갖춰진 방화동 가족휴양촌(www.jangsuhuyang.kr )과 방화동 자연휴양림이 나온다. 휴양촌 안쪽의 자연휴양림은 12평형과 16평형을 갖춘 산림문화휴양관과 숲속의 집, 산책로, 여울목교, 모험놀이장, 지압로 등이 갖춰져 있다. 용소-방화동을 잇는 평탄한 숲길은 계곡 물소리와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걷는 맛이 참 좋다. 휴양촌 관리사무소: 063-353-0855
최대 300여 팀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오토캠핑장은 단연 인기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계곡물이 어우러져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잔디밭에 마련된 주차공간과 함께 취사시설, 화장실 등등 편의시설도 수준급이다.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하기 때문에 피서객이 몰리는 7-8월에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캠핑카를 이용해 야영도 할 수 있다. 데크 1일 대여 1만 5천원. 오토캠핑장 문의: (063)353-0855
장안산은 그 깊은 줄기에 지지계곡도 만들어 놓았다. 동화댐이 있는 번암면 죽림리에서 지지리를 지나 장계면 대곡리까지 이어지는 이 계곡은 길이가 10km에 달한다. 오염 안 된 맑은 물은 거친 물소리를 내며 바위를 타고 넘는데 더위를 피하고 싶다면 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찻길을 따라가다 마음 끌리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자리를 잡으면 된다. 단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취사는 할 수 없다.
☞지울 수 없는 논개의 자취들
지지계곡을 따라가는 743번 지방도로는 험준한 산간(장안산)을 통과해 논개 생가가 있는 주촌마을(장계면 대곡리)로 이어진다. 논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주촌마을에는 생가(초가)와 사당, 외삼문(휘광문)과 내삼문(숭앙문), 논개동상, 사적불망비각, 논개 유허비, 부친의 묘, 기념관 등이 있다. 생가에는 논개의 초상이 걸려 있고, 마당과 마루는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놓았다. 마을 입구에는 논개를 낳기 위해 공을 드렸다는 성황당이 남아있는데, 매년 정초가 되면 조탑과 노송 앞에 제수를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경주마의 고장
논개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계면 명덕리 육십령 자락 46만평의 대규모 부지에는 마방 500개와 실내마장, 원형마장, 말 샤워장, 훈련주로, 교배소, 경매장, 동물병원, 초지 등 경주마를 위한 각종 시설이 들어서 있다. 특히 승마체험장은 장수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를 본뜬 대형 목마에 들어가면 가상 승마를 즐길 수 있는 시뮬레이션 체험장이 설치돼 있다. 승마 경험이 있는 사람은 간단한 점검을 받은 뒤 말을 타고 달려볼 수 있다. 이용료: 성인 30분 기준, 2만원. 문의 063-350-5477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대전 통영 고속도로 장수 나들목-19번국도(무주 방면)-계북면 양악리(정인승 기념관, 토옥동 계곡)-743번 지방도로-하늘내들꽃마을-와룡자연휴양림-장수향교-논개사당-뜬봉샘 순으로 돌아본다. 장수읍에서 742번지방도로가 덕산계곡으로 연결된다. 방화동가족 휴양촌으로 가려면 장수읍에서 남원 방면 19번 도로를 타고 번암면 소재지에서 7번 도로로 갈아탄다. 88올림픽 고속도로 남장수나들목-우회전-국도 19번-번암면 죽산 삼거리 우회전-죽산교-방화동 가족휴양촌. 뜬봉샘은 장수읍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남원 방향(방화동 가족휴양촌)으로 가다 수분리 마을 입구(수분령휴게소/뜬봉샘 기사식당 앞)에서 수분리 마을로 진입, 산길로 1.9km 가면 된다. 장계에서 오동댐-대곡리 논개 생가지-지지 계곡-동화댐-죽림정사로 연결되는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장수/장계행 버스가 1일 4회 운행, 3시간 30분소요. 광주종합터미널에서 장수행 버스가 매일 8회, 전주에서 매일 18회, 대전에서 매일 7회 운행. 장수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장계, 번암, 방화동으로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잠자리=장수읍내의 황토방모텔(351-0500), 광성여관(351-2317) 등을 이용하거나 블루새들승마리조트(353-8880), 장수온천호텔(353-5555)도 좋다. 와룡 자연휴양림(천천면 비룡리 353-1404)도 더위를 달래기 좋은 곳이다. 쪽동백· 참나무· 느릅나무· 낙엽송· 적송 등이 울창한 숲과 맑고 차갑기로 유명한 계곡물, 그리고 다양한 평형의 산막, 숲 그늘에 놓인 여러 개의 평상, 수영장, 산림문화휴양관 등 즐길거리가 쏠쏠하게 갖춰져 있다.
◎맛집=장수 한우를 맛볼 만하다. 장수군청 앞의 민가네한우(351-7238)와 장수와 행복한 농부(351-9991)는 무항생제 장수한우를 저렴하게 사서 구워먹을 수 있는 곳이다. 토옥동계곡(계북면 양약리)의 토옥동산장(353-1216)은 직접 기른 송어회(산천어회)가 맛있고 장계리의 지은장(352-0142)은 백반이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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