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고장이다. 이웃한 창녕의 부곡온천이나 합천의 해인사 같은 명소에 가려 발길이 뜸한 곳이다. 하지만 의령에도 보통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눈길을 끄는 볼거리가 여럿 기다리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달, 지난 일을 돌아보고 새해 다짐도 새길 겸 작심하고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의령을 관통하는 남강
의령읍내로 간다. 읍내로 가기 위해서는 이른바 ‘의령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관문 앞으로는 푸른 남강(南江)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진주의 진양호에서 흘러온 남강은 의령군과 함안군의 군계(郡界)를 이루다가 창녕군 남지읍에서 낙동강과 만난다. 저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처럼 그 물줄기가 도도하면서도 유순하다.
의령관문 오른쪽 절벽 위로 정자 하나가 남강을 굽어보고 있으니 이름 하여 정암루(鼎岩樓)다. 1935년 지역 유지들이 건립한 정자로, 한국전쟁 때 무너진 것을 몇 번의 손질 끝에 다시 태어났다. 정자 아래로는 철교(정암교)가 가로놓여 있고 강물 위로는 솥뚜껑을 닮은 ‘정암(鼎岩)’이란 바위가 솟아 있다. 일명 솥바위다. 여기서 바위 이름이 된 정(鼎)은 세 갈래의 발이 달린 솥의 모양을 본 뜬 글자다. 이 세발솥은 중국 고대국가에서 왕의 권위를 상징했다 한다. 진주 남강에 의암(義岩)이 있듯이 이곳 남강에는 정암(鼎岩)이 있는 것이다. 분위기나 역사도 비슷하다.
들(평야)을 끼고 있는 이곳은 경치가 아름다울뿐더러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왜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곳이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왜군들은 부산에서 진주를 거쳐 호남으로 진출하기 위해 이곳을 거쳐야만 했다. 이런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던 곽재우는 길목인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기습 공격을 가해 왜군을 크게 무찌를 수 있었다. 이것이 곽재우의 의병활동 중 가장 빛나는 승리로 꼽히는 정암진 전투다.
의령 역사에서 곽재우는 독보적인 존재다.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뛰어난 용병술과 지략으로 왜군을 물리쳤거니와 읍내에 그를 기리는 충익사가 있다. 충익사에 가면 의병탑과 내외삼문, 충의각, 사당 등을 살펴볼 수 있고, 기념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곽재우 장군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경내 뜰에 자라는 300년 된 모과나무도 꼭 보기를 권한다.
☞민족의 혼을 깨운 곽재우
유곡면 세간리에 있는 곽재우 생가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충익사에서 20분 거리. 새롭게 복원된 생가는 안채, 사랑채, 별당, 큰 곳간, 작은 곳간, 대문, 문간채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생가 앞에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2호)가 서 있다. 남쪽 가지에서 자란 두 개의 짧은 가지가 여인의 유방을 닮아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들이 찾아와 정성을 들인다는 사연 깊은 나무다. 이와 함께 생가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입구에는 1592년(선조 25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당시 유생이었던 곽재우가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쳐서 의병을 모았다는 현고수(懸鼓樹, 천연기념물 493호)가 수문장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북을 매는 나무’라는 의미의 이 느티나무(현고수)는 높이 20m, 둘레 8.4m이며 수령 520여 년을 헤아린다.
☞억겁의 세월이 만든 신비한 볼거리
약 1억 년 전에 형성된, 빗방울 자국 화석인 신라통중의 우흔(천연기념물 제196호)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평평한 바위 표면에 지름 8∼15㎜, 깊이 1㎜ 정도의 빗방울 자국들이 겹쳐져 있는데, 이것은 가뭄으로 호수 바닥에 쌓였던 퇴적물이 노출되면서 그 위에 떨어진 빗방울 자국이 굳어 돌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그 당시 날씨가 매우 건조했다는 걸 암시해준다. 쉽게 볼 수 없는 이 빗방울 화석은 자연사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의령읍내에서 남강을 끼고 정곡면 쪽으로 가면 남강 절벽에 우뚝 솟은 탑바위를 만나게 된다. 호미산 가파른 절벽 위에 탑처럼 돌판이 층층이 얹혀 있는 신비한 바위다. 탑바위에서 내려다보는 남강과 넓은 들판은 한 폭의 산수화 그 자체이다. 곽재우 장군이 경남 중서부로 진격하는 왜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부의 기(氣)가 모이는 곳
정곡면 중교리 장내마을(일명 담안마을)에 있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생가에도 들러보자.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호암(湖巖) 이병철(1910~1987) 생가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크고 화려한데, 요즘 이곳에는 부자의 기(氣)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매일 수백 명씩 다녀간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광(창고) 등이 일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생가는 토담과 대숲이 둘러싸고 있어 운치와 격조를 느끼게 한다. 1851년 호암 선생 조부가 지은 이 집은 호암 선생이 결혼, 분가하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몇 차례 증, 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호암재단이 관리해 오다 몇 년 전 새로 단장해 완전 개방했다.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월요일 휴무.
한편, 의령은 유난히 부의 기가 잘 모이는 곳이다. 의령 땅을 유유히 흐르는 남강 주변에는 삼성그룹을 위시해 LG그룹, GS그룹, 효성그룹의 창업주들이 나고 자랐다. 의령 사람들은 이게 다 남강변의 강물에 떠 있는 솥바위 때문이라고 말한다. 풍수지리에 따른 하나의 속설이긴 하지만, 예부터 의령의 솥바위에는 ‘주변 20리 부근에 부귀가 끊이질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남강변 솥모양의 바위에 부귀의 기운이 뭉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남강은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다.
☞의령이 품은 위엄 있는 산
용덕면 미목리 신덕산 자락에 들어선 수도사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곳이다. 신라 때의 고찰로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 극락전이 있다. 임진왜란 때 한 번 소실되었다가 사명대사 유정이 다시 중건했다고 전한다. 고요가 흐르는 단아하고 소박한 절집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수도사에서 나와 읍내를 거쳐 자굴산 쪽으로 거슬러 오른다. 자굴산(897m)은 의령의 진산이다. 산 중턱에 옛날 신선이 놀고 갔다는 강선암이 있으며 옆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는 약 3미터 깊이의 동굴과 천연수가 고여 있는 금지샘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조망이 압권이다. 의령땅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리산 최고봉인 천황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등산로는 6군데로, 그 중 칠곡면 내조리-진등-금지샘-써래봉-정상 코스를 추천한다.
☞한우산 턱밑까지 오르다
자굴산과 이웃한 한우산(836m 일명 찰비산)도 웅장하다. 골짜기가 깊고 숲이 울창해 그 안에 들면 겨울에 내리는 비처럼 차갑다고 해서 한우(寒雨)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산행은 하늘 아래 첫동네로 불리는 벽계마을에서 시작한다. 벽계마을에서 산성산(741m)을 거쳐 한우산에 이르는 코스는 5.2km. 한우산은 자동차로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어 더 매력적이다. 벽계야영장에서 시작하는 임도를 따라 정상 턱 밑까지 오를 수 있다. 한우산 북쪽 기슭에는 벽계계곡(찰비골)이 시원스럽게 뻗어 있다. 맑고 차가운 계류가 쉼 없이 흘러내리는 계곡 곳곳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각시소, 농소, 아소 등 소(沼)들이 여봐란 듯이 늘어서 있다.
☞수직암벽 밑에 들어선 절집
찰비골 옆으로 난 호젓한 산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봉황산이 우뚝하다. 봉황의 날개를 단 듯 수직으로 내리뻗은 암석(봉황대(鳳凰臺))이 그 아래 일붕사를 굽어보니 절경 중의 절경이다. 금강산 단애를 축소해놓은 것 같은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이 있는 일붕사는 727년 신라 혜초 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그 전신으로, 동굴법당(대웅전)은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일붕사를 품고 있는 봉화산은 수직암벽으로 이뤄진 산이지만 높이가 40여 미터에 불과해 산행이 크게 힘들지 않다. 산행 중간쯤 돌계단 옆으로 어른 한 사람이 겨우 빠져 나갈 정도의 좁은 석문이 나타나는데 석문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과거 유생들이 시화 모임을 가진 곳이라는 봉황루(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대 구실을 하는, 봉화루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기가 막히다. 일주문 옆과 도로변 초입에 봉화산 등산로(돌계단길)가 나 있다.
☛가는 길=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의령행 고속버스 1일 8회 운행, 부산 서부터미널에서는 26회 운행. 서울역에서 KTX(1일 34회)를 타고 밀양역이나 동대구역에서 하차, 밀양시외버스터미널이나 대구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해 의령행 시외버스 이용.
자가운전: 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나들목-20번 국도-대의-의령읍,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나들목-67번 국도-구지-20번 국도-정곡-의령읍. 신라통중의 우흔, 정암루, 충익사는 의령읍내에 있다.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나들목-20번국도(의령방면)-의령 대의교차로(합천방면 직진)-33번국도-합천 쌍백면 소재지(우회전)-1041번 지방도-궁류면 평촌 삼거리(우회전)-벽계관광지(찰비골, 일붕사 등). 남해고속도로 함안나들목-1011번 지방도-정곡면 소재지-유곡면 신촌삼거리-1041번 지방도-궁류면 평촌 삼거리(좌회전)-벽계관광지. 탑바위는 의령읍내에서 남강변 정곡면 죽전리로 가면 된다. 읍내에서 15분 거리. 이병철 생가로 가려면 정곡면 소재지로 가면 된다. 이정표가 잘 돼 있다. 대전 통영고속도로 단성 나들목-20번국도-대의면-칠곡면 내조리-자굴산.
☛맛집=쇠고기와 선지를 넣고 푹 끓여 낸 쇠고기국밥과 애주가들의 속풀이 음식으로 좋은 메밀국수(의령소바)가 유명하다. 종로식당(573-2785)이 유명하다. 의령소바는 군청 주변에 있는 다시식당(573-2514), 제일소바(572-3863)집이 유명하다. 멸치 국물에 장조림 국물을 넣고 갓 뽑아낸 메밀국수를 넣은 뒤 장조림 고기를 얹어 내온다. 멥쌀로 빚은 떡에 팥소를 넣어 만든 망개떡도 먹어볼 만하다. 망개나무 잎으로 떡을 싸서 망개떡이라고 부른다. 의령시장 안에 있는 남산떡방앗간(573-2422)을 알아준다.
☛숙박=의령읍내에 아비숑모텔(573-0066), 벤쿠버모텔(573-1033) 등이 있으며 벽계계곡 주변의 펜션(민박)을 이용해도 된다. 산내뜰펜션(572-1767), 찰비펜션(www.chalbi.co.kr 572-957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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