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산천초목이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모습은 자연의 섭리다. 스산함과 고요함이 감도는 이 절기, 수도권 최대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용인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자. 에버랜드, 민속촌 외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다고 지레 짐작하기 쉽지만 외곽으로 나가보면 그런 짐작이 틀렸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돌과의 대화
 용인 여행은 영동고속도로 양지 나들목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5분 거리에 세중박물관(www.sjmuseum.co.kr)이 있다. ‘우리 것 우리 얼’을 보여주는 고즈넉한 공간이다. 1만여 점의 석조유물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곳은 국내에서 하나뿐인 돌박물관이다. 우리땅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돌들을 주워 모아 한 곳에 전시해 놓았는데 돌의 모양이며 표정이 참으로 익살스럽다. 전국에서 수집한 1만 여 점의 다양한 돌들이 시대별 지역별 종류별로 전시돼 있다. 돌은 흙, 나무, 물과 더불어 생태 환경의 근간을 이룬다.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돌 속에는 생명과 역사의 편린들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무덤을 지키는 문인석과 무인석,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돌하르방, 마을 들머리나 성문 앞에 서서 악귀와 괴질을 막아주던 벅수, 귀여운 모습의 동자석, 인자한 모습의 부처상, 그리고 각종 생활도구에 이르기까지 5000여 평의 터에 돌과 관련된 모든 것이 모여 있다. 주제별로 나누어진 야외전시관은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석호, 석마, 석사자, 석양, 향로석, 장명등, 태실, 고석, 지석함, 귀부, 상석, 월연석, 십이지신상 같은 분묘 주위에 배치했던 석조물도 볼 수 있다.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표마감 오후 5시. 관람료 어른 5000원, 청소년 군인 3000원, 어린이 2000원. 매주 월요일 휴관. 

공원으로 꾸며진 와우정사
 용인시내에서 안성 방면 57번 지방도를 따라 8km쯤 가면 세계 최대의 와불이 있는 와우정사(031-332-2472, www.wawoo-temple.org)가 있다. 절 뒤편 산자락에  누워있는 이 본전불은 높이 3ｍ, 길이 12ｍ에 이른다. 또 와우정사의 상징인 길이 8m의 거대한 불두도 눈길을 끈다. 절을 에두른 연화산의 모습이 소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와우정사란 이름이 붙은 이 절은 세계 각국의 불상들을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사찰이다. 인도, 미얀마, 스리랑카, 중국, 태국 등에서 가져온 불상 3천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들 불상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절이면서도 공원처럼 가꿔져 있어 산책하기에 딱 좋다.

와우정사에서 야트막한 곱등고개를 넘는다. 고개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용인농촌테마파크(www.yithemepark.kr)가 나온다. 용인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이 테마파크는 우리 들꽃과 원두막 등 농촌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목가적인 정원이다. 요즘 이곳은 가을꽃 천지다. 들꽃광장, 꽃과 바람의 정원, 작물학습원, 암석원, 동물농장, 곤충전시관, 농경문화전시관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드넓게 펼쳐진 경관농업단지에는 코스모스, 국화 등등 형형색색의 가을꽃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12월까지 각종 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주중체험과 주말체험이 있으며 개인, 가족 단위로 수시 접수(온라인 예약)할 수 있다. 유치부와 초등생을 대상으로 곤충탐구교실, 농작물체험, 생물과학탐구, 허브공예품 만들기, 압화 만들기 등을 진행한다. 입장료: 어른 3천원, 어린이 2천원. 개관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매주 월요일 휴관. 체험문의: 용인시 농업기술센터 체험농업팀(031-324-4052).

국내 최대의 종합식물원
 비봉산 자락 서쪽, 안성땅과 접해 있는 백암면 옥산리에는 우리 수목류 1200여 종과 자생식물 1200여 종, 그리고 외국 품종 3600여 종 등 총 6천여 종의 식물을 볼 수 있는 한택식물원이 있다. 2개의 대형 온실과 서른다섯 가지 색다른 테마정원을 갖추고 있는 수도권 최대의 식물원이다. 자연생태원은 면적이 가장 넓으며 식물원의 핵심 공간이다. 인공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살려 심어놓은 1천여 종의 우리 꽃과 나무들은 사철 그 독특한 빛깔과 향기를 안겨준다. 꽃향기를 맡으며 오솔길을 걷는 재미도 그만이다. 이따금 나타나는 다람쥐와 청설모는 사람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는다. 식물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가 일품이며 모두 둘러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식물들을 좀 더 자세하게 관찰하려면 3시간쯤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연중 진행하는 자연생태체험학교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식물원의 주요 시설을 돌아보면서 교과서에 실린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고 전문 강사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정원과 정원 사이로 난 산책길은 아담하고 아기자기하다. 식물원과 바로 연결되는 비봉산에도 올라가 볼만하다. 해발 372미터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자연 생태계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청정 산이다. 낙엽활엽수림으로 이뤄져 있는 산엔 생강나무, 철쭉, 노린재나무 등등 울창한 숲이 맑은 기운을 내뿜는다. 식물원 안에 따뜻한 음료(커피, 유기농차, 핫초코 등)를 파는 찻집과 꽃 산채 비빔 정식, 백암 순대, 황태 구이, 낚지볶음 등을 내놓는 한식당이 있다.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입장료(어른 기준) 8천원, 청소년 6천원, 어린이 5천원. 한택식물원(www.hantaek.co.kr, 031-333-3558).

선인들의 오롯한 자취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수원과 맞닿아 있는 수지구 상현동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심곡서원은 1605년(효종 1년)에 창건된, 정암(靜菴) 조광조(1482∼1519) 선생의 위패(신위)를 모신 사액서원(임금이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린 서원)이다. 현재의 심곡서원이 있는 자리는 원래 정암 선생이 부친의 장례를 모신 후 움막을 짓고 시묘(侍墓)를 하던 곳이라고 전한다. 정암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어려서 김굉필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성리학 연구에 힘써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한사람으로 우뚝 섰다. 그 후 중종 5년(1515) 사마시(벼슬 이름)에 합격, 오랫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왕도정치를 역설하였고, 여씨향약을 실시해 상호부조에도 힘썼다. 그러나 이런 사회 질서에 반기를 든 세력들에게 미움을 산 나머지 결국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서원 한 켠에 서 있는 훤칠한 은행나무 2그루와 향나무 1그루는 정암 선생이 심었다고 전한다. 수령 5백년을 헤아리는 느티나무도 한 그루 서 있다. 사당, 일소당, 재실, 장서각, 내삼문, 외삼문 등으로 구성된 서원은 단아하고 소박해서 저 정글 같은 삶의 어지럼증에 시달리던 이들을 편안하고 고요한 세계로 이끈다. 홍살문을 지나 심곡서원이라고 쓴 현판이 걸린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의 일소당(日昭堂)이 반긴다. 원내의 여러 행사와 강당으로 쓰이는 이 건물 안에는 현판 2좌와 도암(陶庵) 이재(李縡)선생의 시를 새긴 목판 1종이 있다. 일소당 옆에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겹처마의 사당이 있고 그 옆에 있는 정면 4칸, 측면 반 칸의 재실은 원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던 곳이다. 맞배지붕에 홑처마로 단정해 뵈는 장서각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장서각은 이름 그대로 책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한때 67종 486책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1985년에 도난을 당해 현재는 <정암집(靜庵集)>과 <조선사(朝鮮史)> 등만 전하고 있다.

 심곡서원 맞은편, 서원말 산자락에는 조광조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묘는 정경부인(貞敬夫人)인 이씨(李氏)와 합장했는데 묘 앞에는 대리석으로 묘표와 평상석· 향로석이 놓여 있고, 좌우로 망주석과 문인석 등이 자리를 잡았다. 묘 아래에는 대리석으로 된 신도비가 서 있는데, ‘문정공정암조선생신도비명’(文正公靜庵趙先生神道碑銘)라고 새겨놓았다. 신도비문은 노수신(盧守愼)이 짓고, 이산해(李山海)가 글씨를 썼다. 

 조광조의 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기리 광교산 언덕에는 고려 말∼조선 초의 무신인 이종무(1360∼1425) 장군의 묘(경기기념물 제25호)가 있다. 봉분 앞에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다. 이종무는 어려서부터 활쏘기, 말 타기 등에 능해 1381년(고려 우왕 7년) 14세의 나이로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고 1397년(조선 태조 6년)에는 서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몰아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생을 나라 지키는데 몸을 바친 그는 1425년(세종 7년)에 생을 마감하고 이곳에 묻혔다. 인근에 가족 산행지로 좋은 광교산이 있어 연계해 둘러보면 좋다. 광교산(해발 582미터)은 수원과 용인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주변의 백운산과 함께 삼림욕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전통정원의 효시  
 놀이공원으로 잘 알려진 에버랜드. 그 한켠에 들어선 희원(熙園)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아담한 정원이다. 희원은 호암미술관에서 개원한 전통정원으로 에버랜드 북쪽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2만여 평이나 되는 큰 규모임에도 에버랜드에 가려 ‘그곳에 그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아는 이가 드물다.

 희원에 들어서면 전돌로 쌓아올린 우람한 보화문이 반긴다. 덕수궁의 유현문을 본 따 지었다는 보화문을 지나면 대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대나무가 살랑바람에 이파리를 흔드는 모습이 참 정겹다. 대숲 사이사이 서 있는 돌하르방, 물확, 불상, 석등, 벅수, 돌장승은 말은 없지만 방문객들에게 뭔가를 일러주는 듯하다. 머리에 쌍뿔을 단 ‘총각벅수’는 자식을 원하는 사람이 세운 것이란다.

 대숲을 빠져나오면 작은 정원이라 불리는 소원(小園)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 가실리의 옛 지형을 살려 만든 소원은 정자와 연못, 꽃담을 적절히 배치해 정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소원에서 나오면 희원의 중심부인 주정(主庭)이 나타난다. 호암미술관 앞에 자리한 넓은 마당으로 가운데 네모반듯한 연못(法蓮池)을 두고 정자와 작은 폭포, 계류(溪流)를 둔 모습이 우아함과 단정함을 풍긴다. 봉긋한 모습의 중앙 연못과 사방 옆으로 심어 놓은 나무는 아름다움을 더한다. 여기에 앞으로는 호수와 나지막한 산이 뒤로는 웅장한 호암미술관을 볼 수 있어 전통정원의 진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여행 팁(지역번호 031)
▲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양지 나들목으로 나오면 3분 거리에 세중박물관이 있다. 영동고속도로 양지나들목→17번국도→사암리 방면 우회전→CJ물류센터→사암(용담)저수지→SK주유소 앞에서 우회전→300m 직진 농업기술센터 표지판 보고 좌회전→700m 직진 후 우회전→농촌테마파크. 용인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4, 16, 11번 버스 타고 농업기술센터 앞에서 하차. 영동고속도로 용인나들목→용인시내 방면 3㎞→터미널 앞 고가도로 밑에서 좌회전→용인 송담대학교 방면으로 우회전→와우정사. 영동고속도로 양지 나들목-17번국도 백암, 진천방향 10km-백암면소재지-325번국도 장평리 방향 좌회전-10km-한택식물원. 영동고속도로 동수원 나들목-수지 방향-독바위-창현파출소-심곡서원. 죽전역 앞 마을버스정류장에서 81번 시내버스(15분 간격)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조광조의 묘는 심곡서원 맞은편 광교산 자락에 있다.

▲맛집=한택식물원에서 가까운 백암면은 예부터 순대가 유명하다. 면소재지에 옛날백암순대(338-8003), 백암식당(322-5432), 백암본가순대(334-9425) 등이 있다.

▲숙박=농촌테마파크 주변에 풀하우스펜션(339-4248)이 있으며 에버랜드 쪽에 캐리비안펜션(010-5256-1200) 등이 있다. 용인자연휴양림(www.yonginforest.net)에서도 숙박 가능. 숲속의 집, 숲속 체험관, 야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예약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