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활짝 밝았다. 1월은 묵은해와 새해의 의미를 되새기며 신년계획을 하나 둘 실천해가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달이다. 봄은 아직 멀리 있지만 이 추운 겨울, 마음속으로 봄을 맞아들이는 여유도 필요하다. 잠시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보는 것도 삶의 활력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해서 이 추운 겨울, 해맞이와 운하의 고장 포항으로 간다. 포항은 우리나라 철강 산업의 메카이고 제2의 부흥을 꿈꾸는 활력 넘치는 고을이다. 여기에 자연의 순수함과 질퍽한 삶의 현장까지 더해져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흰눈을 머리에 인 내연산
 포항 외곽에 솟아있는 내연산으로 간다. 포항시내에서 7번국도(영덕 방향)를 따라 흥해읍을 거쳐 월포리-송라(광천)-중산리 방면으로 가면 포항의 진산인 내연산 입구에 닿는다. 이즈음 내연산은 흰눈에 덮여 있다. 얼어붙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상쾌하다. 12개의 폭포를 거느린 내연산(해발 710미터)은 그 골짜기를 흔히 내연산 12폭포골 또는 청하골이라 일컫는데, 20리가 넘는 계곡에는 쌍생폭포, 보현폭포, 관음폭포, 연산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놓고 있다. 산행 기점은 보경사. 이 절은 1,400년 된 고찰로 수령 800년 된 회화나무와 400년 된 탱자나무, 고려 오층석탑과 원진국사비 등이 남아 있다. 보경사에서 정상인 향로봉까지는 4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등산 초보자라면 당일치기 산행으론 좀 벅차다. 더구나 눈이라도 쌓이면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보경사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쉬엄쉬엄 오르노라면 물소리가 그렇게 청아할 수 없다. 두 개의 물줄기를 쏟아내는 쌍생폭포(제 1폭포), 용이 물에 잠겼다가 산을 가르고 날아갔다는 잠룡폭포, 검푸른 소가 위압적인 무풍폭포는 내연산의 하이라이트다. 특히 쌍생폭포 왼쪽에 솟구친 바위는 기화대(妓花臺), 폭포 아래 소는 기화담(妓花潭)이라 부른다. 옛날 한 기녀가 절벽 위에서 노래와 춤을 즐기다 술에 취해 소(沼)에 빠져 죽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전한다. 가파른 절벽 사이에 숨은 듯 모습을 드러낸 관음폭포는 두 물줄기가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옆에 10평 넓이의 관음굴이 뚫려 있다. 가장 아름답다는 연산폭포는 신이 만들어낸 걸작품, 사람들은 그 앞에서 찬탄을 연발한다.

♦입맛 당기는 싱싱한 해산물
 시내권에서는 죽도시장이 볼 만하다. 1만 여 평에 1,2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찬 죽도시장은 삶의 진정성을 몸소 느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전국 5대 시장에 들 정도로 규모가 대단하다. 싱싱한 수산물과 농산물, 횟집, 건어물 등이 바둑판처럼 이어진 골목길 좌우로 즐비하고 장꾼들의 호객이 그칠 줄 모른다. 인근에 대형매장이 있지만 죽도시장은 알뜰 주부들의 단골 명소로 자리잡았다. 시장엔 제철 생선인 과메기, 대게를 비롯해 고등어, 명태, 오징어, 문어 등등 동해바다의 고기들이 죄다 모여 있다. 귀하다는 고래 고기도 보이고 생미역, 파래 등 싱싱한 바다 채소들도 만날 수 있다. 죽도시장은 50여 년 전 갈대밭이 무성한 포항 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하나둘 씩 들어서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장 바닥을 이리저리 헤매노라면 억세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줄곧 들려오는데 그 재미 또한 여간 아니다.

♦생명의 물길을 따라가다
  포항엔 또 하나의 명물이 등장했다. 형산강물과 동빈내항 바닷물이 합쳐져 탄생한 포항운하(http://innerharbor.ipohang.org)가 그것이다. 호주 시드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이탈리아 나폴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미항으로 가꾸기 위해 포항시가 2006년부터 추진해 온 도심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한 관광자원이다. 운하를 따라 크루즈와 관광유람선이 운행하고 앞으로 주변에 수변공원을 비롯해 비즈니스호텔, 레포츠 시설, 전망대, 인도교 등이 자리 잡게 된다. 포항운하의 물길이 이어지는 동빈내항(구항(舊港))은 신라시대부터 포항의 중심 역할을 해 온 파란 많은 역사적인 공간이다. 신라초기부터 문물 교류의 주 관문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수산업전진기지로 동해안 최대의 항구였다. 포항운하에서 형산강에 이르는 6.6㎞ 구간에 20t급 46인승 크루즈 1척과 16인승 관광유람선 4대가 상시 운항하고 있다.

♦겨울의 진미
 죽도시장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20여 분을 달리면 짠내 가득한 구룡포에 닿는다. 바다 갈매기들이 춤을 추는 구룡포항은 동해안 최대의 어업전진기지다. 수많은 어선들이 닻을 내리고 있는 항구엔 온갖 해산물이 넘쳐난다. 해서 언제 가도 바다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다. 요즘 구룡포항은 겨울 별미인 과메기가 지천이다. 과메기는 인근 영덕이나 울진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구룡포산을 제일로 쳐준다. 전국 과메기의 90% 이상이 이곳(포항과 구룡포)에서 생산되고 있다. 구룡포항의 진면목을 보려면 새벽 5시쯤 수협 어판장을 찾아가 보라. 날이 밝자마자 어판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이른 아침, 대화퇴(독도 북동쪽 공해상의 비교적 수심이 얕은 해저지형)어장에서 잡아온 오징어, 꽁치, 대게 등을 뱃전에 부려놓으면 여기저기서 경매꾼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도 구룡포다. 그 시절, 약삭빠른 일본인들은 이곳 구룡포를 어업 전진기지화 하면서 대거 이주해 살았다. 구룡포항이 내려다보이는 구룡포공원 주변으로 일본식 가옥들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다. 

♦포항 여행 1번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구룡포를 떠나 호미곶으로 간다. 바다는 벗이 되어 줄곧 따라온다. 해안가 야트막한 언덕을 몇 번 넘고 갯바위와 해변을 둔 작은 포구를 지나 큰길 옆으로 난 둑길을 따라가는 여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자잘한 파도가 밀려오는 정겨운 어촌마을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은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 길은 길목마다 횟집이며 명소가 곳곳에 박혀 있고 어디에 멈춰서도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호미곶.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포항 여행 1번지다. 호미곶에는 등대박물관, 상생의 손, 바다카페, 해맞이광장 등 볼거리들이 몰려 있어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마을이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호미곶(虎尾串)으로 불리는데, 조선시대 고산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이곳을 일곱 번이나 답사한 뒤 한반도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했다. 해맞이 광장 앞 바다 속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청동 손 한쌍(상생의 손)은 이곳의 명물. 해맞이공원에서 영덕으로 이어지는 20번 지방도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최근에는 호미곶 구름다리도 완공돼 또 하나의 볼거리로 등장했다. 호미곶은 일출도 멋있지만 일몰도 멋있다. 일몰은 호미곶 공원에서 약 500m가량 떨어진 ‘까꾸리계’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 볼 수 있는데, ‘까꾸리’는 갈고리의 방언으로 청어를 쓸어 담을 정도로 어획량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해맞이공원에서 영덕으로 이어지는 20번 지방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아주 좋다.

♦겨울 산사에서 나를 돌아보다
 호미곶에서 포항시내로 나온다. 시내 한쪽을 관통하는 형산강을 건너면 연일읍. 여기서 철강공단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왼쪽으로 포스코 공장을 끼고 큰 길을 따라 11km쯤 달리면 연못(오어호)과 산을 병풍처럼 두른 고찰을 만나게 된다.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와 혜공대사의 일화를 간직한 오어사(吾魚寺, 옛 이름은 항사사(恒沙寺))다.
 오어사로 들어가는 길은 운치와 그윽함이 참 좋다. 산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오어호가 오른쪽으로는 운제산이 우뚝한데, 호수에 비친 나무 그림자며 산숲이 청신하기 그지없다. 가람들이 가지런히 둘러선 경내 뒤쪽에 걸쳐진 구름다리(출렁다리)를 건너 원효암으로 가는 길은 산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다. 길에서 내려다보는 오어호와 주변 풍치도 아름답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운제산 산행에 나서보는 것도 좋겠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막힘없이 툭 트여 있다. 푸른 동해바다와 굽이굽이 흘러가는 형산강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는 길=각 지역(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에서 출발하는 고속버스나 열차, 항공편으로 포항까지 간다. 포항종합터미널에서 보경사행 시내버스 1시간 간격 운행. 포항역 앞에서 구룡포, 호미곶행 직행버스 이용. 자가운전: 대구포항고속도로-포항시-7번국도(영덕방향)-흥해읍-월포리-송라(광천)4거리(좌회전)-242번 군도(중산리 방향)-중산리-보경사(내연산)주차장. 경부고속도로 영천 나들목-포항 방면 28번 국도-안강-신광 소라면-보경사 이정표. 경주(7번 국도)-포항(31번 국도)-구룡포(912번 지방도)-호미곶. 경부고속도로 북대구 나들목-도동 나들목-연일분기점-포스코-해병사단-포항공항-구룡포 방면(31번 국도)-구룡포-925번 지방도-대보면(호미곶). 포항시내(오거리)-포스코 방향 14번 국도-오천(이정표 있음)-오어사. 포항-오천간 시내버스 운행.

◆숙박=내연산 입구에 있는 연산온천파크(054-262-5200)는 숙박과 온천사우나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구룡포항 주변에 아쿠아모텔(284-6900) 등이 있고, 호미곶 근방에도 해오름펜션(284-9790), 등대펜션(010-7362-3366) 등 숙박시설이 많다. 

◆맛집=내연산 입구에 산채비빔밥, 산채정식 등을 내놓는 식당이 여럿 있다. 구룡포항 주변에 겨울 별미인 과메기를 맛볼 수 있는 횟집이 많다. 가꾸네모리국수(276-2298)는 해물국수 맛이 좋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