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화암사'

헬스미디어l승인2023.08.22l수정2023.08.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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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의 원래 이름은 화엄사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후기인 769년(혜공왕 5년) 우리나라에 참회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의 개조 진표율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진표율사는 이 절에서 수많은 대중들에게 ‘화엄경’을 설했으며, 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중 31명이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69명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었다고 한다. 

진표율사는 이 사찰에서 지장보살의 현신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을 창건, 화암사의 부속암자로 정했다. 

금강산 ‘화암사’는 금강산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진표율사의 뜻이 담겨 있는 사찰로 금강산 팔만구암지의 첫 번째로 손꼽히는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한 화암사(禾巖寺)는 전통사찰 제27호로 신라 혜공왕 5년 진표율사(眞表律使)기 창건하였다. 

진표율사는 법상종의 개조로서 법상종은 참회불교의 자리매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으로부터 359년 전인 인조 11년 택당 이식(李植) 선생이 간성 군수로 있을 때 썼다는 간성지 화암시조에 의하면 「천후산 미시파령(天吼山 彌時坡嶺=미시령) 밑에 화암(禾岩)이란 바위가 바른 편에 있기 때문에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고 전한다. 

산 허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까이는 영랑호, 멀리는 창해에 임해 있고 양양, 간성의 모든 산과 평원 심곡이 눈 아래 보이고 넓고 아름다운 경치가장관이다. 

뒤에는 반석과 폭포가 특수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히 볼 만하다.

이후 1622년에 절이 불에 타버렸으며, 지금은 중권 중이나 완공되지 못했다. 옛날에는 크고 우아한 문루가 있었는데 망가졌다. 

문루에서 바라보는 창해에서 해 뜨는 모습은 강호를 찾는 데 있어 이보다 나은 곳이 없는데, 옛사람들은 찾아와 놀아보지 못했으며 지방 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또 관동지방에는 이름난 곳이 많아 과객들이 이곳까지 올 겨를이 없었으므로 화엄사는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1911년 건봉사의 말사가 되었고 1915년 소실, 6.25로 폐허, 1986년 중창, 화재와 중건을 거듭하다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 때 불교 국기 1,000여 명이 대웅전에서 수계를 받아 유명해졌다. 
동쪽에는 발연사가 있고, 서쪽에는 장안사, 남쪽에는 화암사가 있어 금강산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진표율사의 뜻이 담겨 있는 시찰이다.

화암사는 오랜 세월 동안 흙 속에 묻힌 옥돌처럼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근래에 이르러 웅산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많은 불사가 이루어져 새로 재건, 단장되어 많은 불자들과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최북단 금강산남쪽 첫 관문인 사찰로, 2011년 4월 5일(음력 3월 3일 삼짇날)부터 온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미륵대불과 해맞이 공원 조성 불사 1,000일 기도회 향해 2014년 10월 25일 미륵부처님 점안 법회를 봉행했다.

전국 불자들의 동참과 함께 미륵부처님의 나투심으로 속히 통일이 이루어지고 이 나라가 미륵 부처님의 무량한 기피의 복덕으로 용화 안락 정토가 규현(具顯)되기를 간절히 발원하고 있다(출처; 금강산 화암사, 홈페이지,
http://hwaamsa.quv.kr/).

수바위 이야기
신라 36대 해공왕(惠恭王) 5년 진표율사가 769년에 창건한 화암사 남쪽 3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수바위는 화암사창건자인 진표율사를 비롯한 이 절의 역대스님들이 수도장으로 사용하여 왔다.

계란모양의 바탕위에 왕관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윗면에는 길이가 1미터, 둘레 5미터의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는 물이 항상 고여 있어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수바위 이름의 ‘수’자를 수(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수(秀)자로 보는 사람이 많다.
수바위의 전설을 보면 화암사는 민가와 달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은 항상 시주를 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절에 사는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편안하게 불도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객승(客僧) 한 사람이 찾아와 이 절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음날 날이 오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아 할 구멍에서는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었다. 
객승의 욕심 탓에 산신(山神)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 후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일주문(부처와 중생이 하나임을 상징)
화암사 입구에는 일주문이 있다. 
이 일주문에는 ‘금강산 화암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일주문이라는 뜻은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하나의 기둥과 같이 세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일주문을 통과하여 100미터를 올라오면 좌측 편에 부도, 탑비 20기의 승탑이 천년명찰임을 중명해 주고 있다.

대웅전(화려한 단청과 꽃문살, 심우도)

화암사 큰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측면 각 3칸의 다포계 겹처마 양식으로 팔작지붕의 전통 양식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면 상단에 수기 삼세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양으로 좌측에
과기불인 제화갈라보살과 우측면에 미래불인 미륵보살 세분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정좌하고 계신다. 
그리고 신중탱화는 동진보안보살과 금강신, 제석, 범침팔부신중 등 48신중
을 모신 탱화가 봉안 되어 있다. 
화려한 단청과 문살의 꽃문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법당 밖 심우도 그림은 불교의 최종 목표가 깨달음이 아니라 깨달음 이후의 중생교화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팔각구층석탑(부처님 진신사리 봉안)
불교에서의 탑은 본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오른 뒤, 사리를 모아 봉안했던 것으로 무덤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탑 안에는 사리 외에도 부처님을 상징하는 물건들(불경, 불상 등)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8각 9층 석탑양식은 고려 시대로 들어와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범종각(풍악 제일루)
불전사물인 범종, 운판, 목어, 법고 등을 비치하는 누각이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범종루의 공식 명칭은 풍악 제일루이다.
풍악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며, 제일루는 누각 안으로 들어가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범종루에서는 수바위와 동해 그리고 속초 시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서도 멋지지만 누각 안의 그림 하나하나 빼놓을 것 없는 멋진 곳이다.

하항마상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菩提樹) 아래의 명상)
수하항마상은 부처님의 생애를 나타낸 팔상 성도의 6번째로 보리수나무 아래에 고요히 선정에 잠긴 수행의 모습이다.

부처님은 기원전 544년경 인도 카필라 사카(KapilaSakya)족의 왕자(싯다르타)로 태어나 29세에 출가하였고, 그 당시 많은 수행자처럼 극도의 고행으로 “위 없는 깨달음(無上若提)”을 얻으려 육체적 고통을 가하였다.

그러나 6년 동안 고행이 최상의 깨달음이 아님을 알고, 싯다르타는 삡팔라 (Pippala)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었다.

이 나무는 훗날 보리수(菩提樹)라고 불리게 된다. 

그 나무 아래에 반듯하게 앉아 욕망과 고행의 양극단을 떠나 중도 수행으로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깊은 선정에 들면서 맹세하였다.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 가죽과 뼈와 살이 다 없어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費相)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일어나지 않으리라”

싯다르타는 갖은 마라(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깊은 명상에 들었다. 

이렇게 해서 칠 일째 되는 날, 동쪽의 새벽녘 샛별을 보고 마침 내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 버릴 “아뇩다라 삼막삼보리, 무상 정등정각(無上正等正豊)”을 이루었다. 이때 싯다르타 왕자 나이 35세, 음력 12월 8일이며, 이 세상의 위대한 부처님이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49일 동안 보리수아래에서 선정삼매(禪定三昧)의 완전한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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